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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성-삼성 승계구도 닮은꼴-삼남 조현상, 제2의 이건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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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회장 조석래)의 경영권 승계구도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장남인 조현준 사장과 삼남인 조현상 부사장(사진)으로 승계구도가 좁혀졌다. 장자승계 원칙이 엄격한 재계에서 의례 장남인 조 사장이 조 회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조 사장의 경찰 내사 소식이 잇달아 알려지면서 조현상 부사장으로 무게가 실리는 눈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효성이 범삼성家의 승계구도 절차를 그대로 밟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 상황이다. 과거 삼성 역시 장남 이맹희씨가 선친인 故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버지 눈 밖에 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결국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효성 첫째 비자금 횡령, 둘째 사장 사임, 셋째 후계자 될까 
삼성 첫째 자리 부재, 둘째 사카린 밀수, 결국 셋째가 승계

 

조현문 효성중공업 PG장(부사장)이 지난달 28일 부사장직을 사임하고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1999년 효성에 입사해 2006년 중공업 부사장을 맡아 온 조 부사장은 “앞으로는 변호사로서의 새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회사에 밝히며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임과 동시에 조 부사장은 더클래스효성 등 그룹의 다른 6개 계열사 등기 임원직에서도 모두 물러났다. 또한 같은 날 공시를 통해 보유 중인 (주)효성 지분 전량 약 252만주(7.18%)를 처분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탓에 그룹 주식이 폭락했고,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물론 1000억 원에 달하는 오너 일가의 주가 총액도 타격을 입었다.

 

조현문 부사장의 돌연 사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 부사장이 장남 조현문 사장과 셋째 조현상 부사장 등 형제들과 경영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어 물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룹 측은 “형제 사이에는 문제가 없고 본인이 법조인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일 뿐”이라며 항간의 불화설을 일축시켰다.

 


효성중공업 측 관계자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주주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처분한 것”이라며 “지분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보다 시장에서 처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시간외 매매로 기관에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조 사장의 잇단 악재도 조현상 부사장의 후계자설에 힘을 실었다. 지난 정부 당시 불거진 ‘특혜 사면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휘말리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조석래 회장과 조 사장이 그룹 계열사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해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막내 조현상 부사장은 형들과 달리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그룹 내 입지를 다졌다. 비록 세 형제 중 막내로 입사는 가장 늦었지만 지분 및 실적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형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실적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효성의 주가가 급락했을 당시 조현상 부사장은 공격적으로 자사주를 매수해 6%였던 지분을 현재 수준까지 끌어올려 경영권 확보를 위한 초석을 다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이다.

 

삼성과 무엇이 닮았나

조현상 부사장의 부상은 삼성 후계 승계 당시 이건희 회장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故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는 일찍이 삼성 후계자로 지목됐다. 제일비료 회장직을 비롯해 17개 직책을 맡을 만큼 그룹 전반에 걸친 경영수업은 물론, 이병철 회장과 그룹 중대사의 대부분을 함께했다.

차남인 故 이창희씨는 미국 마그네틱미디어와 제휴해 새한미디어를 설립, 회장직을 맡았다.

 

삼남인 이건희 회장은 당시 일본 유학 중으로 귀국 후 동양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계열사가 맡겨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1966년 9월 일명 ‘사카린 밀수’ 사건을 기점으로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구도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이병철 회장에게는 비료공장 건립이 일생일대의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잘못 꿰어진 단추는 결국 말썽이 되기 마련. 공장을 짓기 위해 정부의 보증 아래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4000여만 달러의 상업 차관을 들여오면서 이병철 회장과 두 아들 이맹희·창희씨간의 틈이 벌어지는 단초가 됐다.

 

당시 이맹희씨 증언에 따르면 “미쓰이 측에서 차관을 현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 필요한 기계로 대신했다. 또 이와 함께 당시 관행이었던 리베이트 100만 달러도 함께 삼성에 제공됐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고 박정희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돈이 필요했고 삼성은 건설용 장비가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삼성의 밀수 품목은 변기, 냉장고, 전화기, 스테인리스판, OSTA등 다양했다. 문제는 사카린의 원료인 OSTA에서 발생했다. 삼성에서 공급받기로 한 금북화학의 이전 OSTA 공급업체가 어느 날부터 금북화학이 OSTA를 가져가지 않자, 이상하다 싶어 뒷조사를 하면서 삼성의 밀수 실체가 외부에 발각됐다.

 

삼성은 이를 덮기 위해 모든 수를 동원했지만 더 이상 정권의 보호도 소용없을 만큼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결국 이창희씨가 사건 책임자로 모든 걸 짊어지고 감옥살이를, 이병철 회장은 경영에서 자진 은퇴하기에 이른다. 이맹희씨는 계열사에 주력하라는 이병철 회장의 주문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떠난다.

 

결국 이들이 후계구도에서 멀어져 가면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이건희 회장이 삼성가의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한때 이창희씨가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이병철 회장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들을 불러 모아 경영권 일체를 이건희 회장에게 넘겼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효성이 삼성처럼 장남이 아닌 삼남이 후계구도 절차를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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